제목
그리스적 방식 vs 유대적 방식 (Greek versus Hebraic)
말씀
내가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 자식들을 치게 하며 너를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나. 스가랴9:13
내용
초대교회 시대에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발전시키는데 강조를 했습니다.
이건 유대적 방식이었습니다. 그 때에는 성서가 지금처럼 접근하기 쉬운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제일 중요한 포커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백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져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건전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순종이 열쇠였습니다.
모든 결정을 근거와 분석을 바탕으로 내린 것이 아니라 순종으로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니 그 계명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 훌륭한 통찰력이 있어 영원히 여호와를 찬양할 것이다.” 시편 111:10
이런 이유 때문에 성서에 나오는 많은 기적들이 자연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었습니다. (오병이어, 갈라진 홍해를 횡단,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발견, 땅 밟기로 여리고 성 몰락 등)
하나님께서는 항상 지도자의 지식이 아니라 순종을 확인하길 원하셨습니다.
초대교회 다음 세기의 교회에는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을 통해 지식과 근거가 신학의 바탕이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교회는 말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람들을 교회 지도자로 선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역사와 시대가 흘러가면서 교회들은 지식과 근거에 신학의 기준을 두는 것을 점점 더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적인 영이 교회에 들어온 후부터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친밀한 관계가 결과적으로 제일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이며 친밀한 관계로부터 지식을 위한 가르침과 제자 삼기에 포커스를 맞춘 것입니다.
이런 현상으로 성장은 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능력이 없는 종교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랍비가 품질관리를 해 주는 것이 임무였지 지금의 목사처럼 설교로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랍비들은 신자들과의 대화를 높여진 교단에서 하지 않았었습니다.
모든 신도들이 둥그렇게 앉아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은혜와 말씀이 무엇인지를 나누는 식으로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포커스는 하나님의 능력이 각 사람들을 통해 공동체로 나타나는 것에 있었지 자기 혼자만 은혜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26)
당신의 포커스는 지식을 더 얻으려는 곳에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친밀함과 능력을 성장시키는 곳에 있습니까?